메모리/작업노트
2009
양태숙
2009. 9. 14. 01:47
에스키스는 시를 쓰는 것과 같은 작업이다.
회화에서 재료와 기법은 한계에 다다른지 이미 오래전이고 오히려 그린다는 행위가 다시 새로워진다.
그래서 재료와 기법보다는 내가 무엇을 그리고 싶은가를 먼저 생각한다.
오일 페인팅은 늦게 마르는 단점이 있지만 그리는 동안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마를 동안
몇점의 그림을 돌려가며 그리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밑칠을 짙은 색으로 해 말린 다음 그 위에
점점 밝은 색을 칠한다. 그 물감이 마르기전에 막대기로 긁어서 드로잉을 한다. 밝은 윗색 아래
짙은 밑색의 선이 손이 그은 선 그대로 나타난다. 이때에 드로잉의 묘미를 느끼지만 요즘은
사실적인 묘사를 더 하고 있다. 나무나 잎사귀의 형태를 그리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그들의
내면을 표현하려고 한다. 잎사귀의 섬세한 잎맥을 그릴 때는 우주의 별빛과 햇빛을 그리는 것 같은
벅찬 떨림도 느낀다. 우리 인간들의 손금을 들여다 볼 때처럼...
나무와 잎사귀들이 시처럼 마음에 가득하고, 그런 시는 구름 따라 가고 싶은 나무처럼 내게
그림을 그리게 한다. 잎사귀가 된 내가 구름을 만나 하늘을 여행하고, 또 나뭇가지가 되어
하늘에 그림을 그리는 나를 꿈꾼다.